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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프로젝트 E
Project E (Estrogen Deployment Experiment)
파일:프로젝트E_로고.png
실시 시기
1977년 ~ 1982년
실시 지역
콘스탄티노폴 전역
루이나령 콘스탄티노폴 자치구 상수도망
유형
생체화학 실험 / 인권 침해
주관 기관
루이나 보건사회부 산하 생체실험위원회 (CIBR)
공식 명분
콘스탄티노폴 식수 내 호르몬 반응성 조사 및 지역 정서안정화 계획
피해 내용
고환 기능 이상
청년 남성 대상 기능 저하 사례 1,200건 이상 보고
행동 변화
일부 남성의 감정 불안정, 체력 저하, 성정체성 혼란 등 부작용 다수 발생
환경 피해
하수 유출로 인해 인근 하천 생태계 교란, 암컷 물고기 개체 폭증
정보 통제
1983년까지 전면 기밀 분류
피해 인구 규모
추정 피해자 약 35,000명 (직·간접 노출 포함)
후속 조치
2004년 진상규명 보고서 발간, 피해자 보상은 현재까지 지연
논란 및 의혹
해당 실험이 루이나 정부가 플라자 그룹과 계약하여 수행한 민간-국가 합작 프로젝트였다는 정황 있음

1. 개요2. 배경3. 상세
3.1. 계획3.2. 실행3.3. 결과
4. 피해5. 연관된 인물/기관/ 업체


1. 개요 [편집]

프로젝트 E(Project E)는 1977년부터 1982년까지, 루이나 정부가 콘스탄티노폴 자치구에서 비밀리에 진행한 생체화학 실험으로, 실험의 공식 명분은 "식수 내 에스트로겐 계열 호르몬의 반응성과 정서안정화 효과에 대한 조사"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콘스탄티노폴 전역의 수도망에 미량의 합성 여성호르몬(Estradiol 유도체)을 장기간 투입하여 지역 주민, 특히 청년 남성 집단의 생리적·심리적 변화를 관찰하고자 한 대규모 인체실험이었다.

실험은 루이나 보건사회부 산하 생체실험위원회(CIBR)가 총괄하였으며, 플라자 그룹 산하 화학기업들과의 민간 계약을 통해 실질적 물질 투입 및 모니터링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험이 진행된 5년간 공식적인 고지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해당 지역의 식수원은 군사시설로 분류되어 외부 접근이 제한되었다.

1983년까지 관련 정보는 전면 기밀로 분류되었고, 이후 콘스탄티노폴에서 발생한 남성 정자 수 감소, 성기능 이상[1], 성정체성 혼란 등의 증상이 지역사회 문제로 부각되면서, 프로젝트 E의 존재가 시민단체와 일부 내부 고발자에 의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특히 하수 시스템을 통해 유출된 호르몬 성분이 하천 생태계에 영향을 끼치며, 암컷 물고기의 비정상적 개체 수 증가와 성전환 현상이 보고되면서 실험의 여파는 환경 문제로까지 확대되었다.

2004년, 루이나 의회 보건감사특위는 해당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보고서를 발간하였으며, 이에 따르면 실험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된 인구는 약 3만 5천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피해자들에 대한 명확한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플라자 그룹과의 협력 여부, 군 당국의 관여 가능성, 정신의학적 데이터의 해외 반출 여부 등과 관련해 지속적인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 실험은 루이나 현대사에서 가장 심각한 국가 주도 인권침해 사건 중 하나로 평가되며, 콘스탄티노폴 점령 이후의 전후 행정과 식민지 정책의 비윤리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2. 배경 [편집]

1970년대 중반, 루이나가 점령 통치하던 콘스탄티노폴 자치구는 극심한 사회 혼란과 치안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1969년 종전 이후 루이나군이 급히 행정권을 이양받았지만, 충분한 병력과 행정 인프라 없이 강행된 군정 통치로 인해 공공서비스는 마비되었고, 그 틈을 타 무장세력·갱단·극단주의 단체들이 자치구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특히 1975년 이후 콘스탄티노폴 남부 지역에서는 주민 대상의 강도·폭력·성범죄 비율이 루이나 본토 평균의 7배를 넘었으며, 경찰관 피살 사건도 급증했다.

이에 따라 루이나 중앙정부, 특히 보건사회부와 내무부 일부 실무진은 이 지역 주민들의 폭력 성향 자체를 억제할 수 있는 장기적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보건사회부 산하 생체실험위원회(CIBR)는 신경생물학적 억제 실험과 환경호르몬 조절을 통해, 범죄 가능성이 높은 인구집단의 충동성과 공격성을 완화할 수 있다는 연구 자료를 검토하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프로젝트 E였다.

실험의 표면적 명분은 ‘식수 내 호르몬 오염 실태 조사 및 정서안정화 효과’였지만, 내부 문건에 따르면 이 계획은 명백히 폭력 범죄율을 장기적으로 억제하기 위한 생물학적 개입 실험으로 기획되었다. 특히 에스트로겐 계열 합성물질이 남성의 공격성을 낮추고 사회적 순응 행동을 유도할 수 있다는 일부 선행 연구를 근거로, 콘스탄티노폴 상수도망에 직접적으로 해당 물질을 투입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프로젝트 E는 단순한 보건 실험을 넘어, 루이나 정부가 점령지 주민의 심리적·생리적 통제를 꾀한 국가 차원의 ‘사회공학적 실험’이자, 전후 통치 전략의 일환으로 수행되었다는 점에서 오늘날까지도 강한 윤리적 비판을 받고 있다.

3. 상세 [편집]

3.1. 계획 [편집]

1976년 말, 루이나 중앙정부는 콘스탄티노폴 자치구를 장기적 통제 하에 두기 위한 ‘사회 안정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비가시적 생체 억제 실험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콘스탄티노폴은 1969년 전쟁 종전 이후 행정권은 명목상 자치정부에 이양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루이나 군정청과 민간 용역이 지배하는 무정부 지대였다. 도심은 방치되었고, 하수처리나 위생, 식수 공급은 세인트 네프티스 그룹 산하 위탁업체들이 임의로 운영하고 있었으며, 공공병원이나 정규 보건기관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였다.

이러한 무주지 상태는 루이나 관료들에게 이상적인 실험 환경이었다. 법적 감시가 없고, 언론 접근이 차단되며, 피해 통계도 수집되지 않는 공간에서 정부의 이념적 실험을 수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77년 1월, 루이나 보건사회부 산하 생체실험위원회(CIBR)는 공식적으로 "콘스탄티노폴 시민의 정서 안정과 사회 순응을 유도하기 위한 장기적 공공보건 개입 계획"을 통과시켰다. 회의록에는 “공공의료 기반이 없는 지역의 주민은, 정부의 보건 전략에 완전 의존할 수밖에 없으므로, 가장 순응적인 대상 집단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표현이 명시되어 있다.

그에 따라 실험의 핵심 목표는 다음과 같이 설정되었다
1. 남성 폭력성의 생물학적 억제: 고농도 여성호르몬 투입을 통해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인위적으로 억제하고, 충동성과 공격성을 감소시킨다.
2. 정신적 순응성 향상: 감정 기복을 유도하여 자발적 복종, 무기력, 고립감을 확대시킨다.
3. 실험 효과의 군사적 전환 가능성 탐색: 향후 반정부 지역, 포로수용소, 소요지대에 적용 가능한 생체억제 전략으로 발전시킨다.

실험 물질은 플라자 그룹 계열 라보르 케미컬스가 공급한 합성 에스트로겐 유도체였으며, 루이나 육군 공병단이 정수시설에 설치한 고정 주입기로 수도망에 혼합 주입하는 방식으로 계획되었다.

CIBR이 작성한 내부 메모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존재한다:
“콘스탄티노폴은 정부가 단 한 번도 약속한 적 없는 권리를 요구하는 자들의 도시다. 우리는 그 오맘한 이들이 사는곳에 대답 대신, 침묵을 주입할 것이다.”

실험은 '공공보건 사업'으로 위장되었고, 루이나 언론은 당시 “전후 지역 정화 및 수도 안정화 사업이 시작되었다”는 내용만을 보도하였다. 실험의 존재와 목적, 수단은 전면 기밀로 분류되었으며, 루이나 국회조차 보고받지 않은 ‘비인가 정책 실험’으로 유지되었다.

3.2. 실행 [편집]

1977년 1월, 루이나 육군 공병대는 ‘전후 재건기반 조성사업’이라는 이름의 민관 협력 사업을 표방하며, 콘스탄티노폴 자치구 전역의 정수장, 급수소, 수도관로, 상수도망의 통합 관리권을 확보하였다.

표면상 이 조치는 루이나 국토개발청과 민간 위탁업체 간의 기술 지원 계약에 따른 공공 기반시설 개선 사업으로 설명되었으며, 루이나 정부는 이를 “내정 간섭이 아닌 기술적 조력”이라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유지했다. 공문과 보도자료에는 "자치정부의 공식 요청에 따라 지원되는 순수 인도주의적 복구 조치"라는 문장이 반복 삽입되었고, 루이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역시 해당 사업에 대한 구체적 보고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루이나 육군 소속 제41도시기반시설공병대대(41st Urban Engineering Battalion)가 직접 콘스탄티노폴 상수도망의 핵심 설비를 점거하고 통제하였으며, 이 과정은 루이나 국방정보실(MDI)의 사전조사와 실무지휘 하에 수행되었다.

정수장 11곳과 급수조정소 6곳에 배치된 부대는 보안등급 ‘절대 기밀(Top Sealed)’로 분류된 계획서에 따라, 고정형 화학물질 자동주입장치(LCEV-77)를 설치했다. 이 장치는 시간당 120L의 호르몬 용액을 상수도에 주입할 수 있으며, 지능형 밸브 시스템을 통해 구역별 농도를. 개별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설비였다.

실험의 수행은 플라자 그룹 산하 생화학기업 ‘라보르 케미컬스’가 계약상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위장되었으며, 정부는 공식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정수장 내부 설비 가동 기록에는 군 코드명으로 구성된 외부 접속 명령 기록이 남아 있었으며, 이후 밝혀진 자료에 따르면 매일 05:00와 17:00 정각, 루이나 공병대 통신단이 주입 명령을 내려보냈다는 정황이 있다.

투입된 물질은 17α-에티닐에스트라디올(EE2) 유도체 기반의 고활성 합성 여성호르몬이었다. 통상적인 WHO 권고치가 1~2ng/L 수준인 것에 반해, 프로젝트 E는 초기부터 80~120ng/L 수준의 고농도로 시작하였고, 실험 2년차에는 최대 250ng/L까지 농도가 상승한 구역도 확인되었다. 이는 경구피임약 기준으로 하루 10~15정 이상을 복용하는 것과 동일한 용량이며, 특히 사춘기 전후의 남성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내분비계 변화를 유발할 수 있는 수치였다.

주민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이 물을 마시고, 씻고, 요리하고, 이를 닦았다. 공공홍보는 전무했고, 수도 수질 변화에 대한 정보는 ‘복구공사로 인한 일시적 수질 저하’라는 간단한 안내문으로 대체되었다. 정수장 및 수도망은 군사시설로 재지정되어 일반인의 접근이 차단되었다.

이러한 환경은 루이나 정부에게 이상적인 생체실험 환경이었다.

콘스탄티노폴은 법적으로 루이나 본토가 아닌 “외부 민정관할구(External Civil District)”로 분류되어 있었고, 자치구 주민 대부분은 루이나 국적이 없거나 미등록자(Undocumented Person)로 간주되어 헌법적 권리 보장 대상에서 제외되었으며, 자치정부는 사실상 붕괴되어 있었고, 공공의료기관도 단 하나 존재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실험에 따른 신체적·정신적 피해는 체계적으로 기록되지 않았으며, 루이나 중앙정부는 법적·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완성한 셈이었다.

이 와중에 피해를 실시간으로 관찰하고 기록한 유일한 존재는 루이나 국경없는 의사회(Doctors Without Borders – Ruina, DWB-RU)였다.

DWB-RU는 1978년부터 콘스탄티노폴 동부, 남부, 내륙 고지대에 걸쳐 이동식 진료소 6곳과 임시 야전클리닉 3곳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국제법상 중립 NGO의 지위를 인정받고 있었다. 이들은 실험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단지 “극심한 내분비계 이상 반응이 지역적으로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비공식 임상 보고서를 누적 작성하기 시작했다.

1979년 6월 17일자 DWB-RU 제4진료소 야전기록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오늘 진료소를 방문한 남성 청소년 3명 모두 유방 통증과 가슴의 단단함을 호소했다. 이 중 1명은 ‘배가 찢어질 것 같고, 피가 나올 것 같다’는 표현을 반복했으며, 자신이 생리를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정신착란이 아니라, 신체 내 호르몬 체계의 구조적 혼란이 유도한 감각 환각으로 보인다.”

1980년 기준, DWB-RU는 전체 진료 환자 중 약 12%에서 여성호르몬 과다 반응으로 추정되는 유방조직 이상, 성기 위축, 고환통증, 정체성 혼란 증상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자료들은 정식 의학 저널에 발표될 수 없었고, 루이나 정부는 이 보고서를 ‘의료적 비전문가들의 비과학적 편견’이라며 부인하였다.

1981년 2월, DWB-RU 제2진료소는 루이나 군 병력에 의해 “시설 위생기준 미달 및 비인가 진료행위”를 이유로 강제 봉쇄되었고, 모든 의료기록은 압수되었다. 일부 기록은 소각되었으며, 진료소장인 닥터 레미 사울리에르는 루이나 국외 추방 명령을 받고 국경을 넘는 과정에서 실종되었다. 그는 이후 국제실종의료인 명단에 등재되었다.

1982년 말, 프로젝트 E는 공식적인 종료 발표 없이 조용히 해산되었고, 상수도 주입장치들은 플라자 그룹에 의해 해체 및 폐기되었다. 공식 문서상에는 “기술 검증 중단에 따른 실험 정리”라는 한 문장만이 남아 있다.

3.3. 결과 [편집]

1980년, 루이나 국경없는 의사회(Doctors Without Borders – Ruina, 이하 DWB-RU)는 콘스탄티노폴 전역에 걸쳐 이동형 텐트 진료소와 응급 진단 캠프를 설치하며 본격적인 현장 의료 활동을 시작했다. 공식적으로는 전후 재건을 위한 인도주의 보건사업의 일환이었지만, 현장에서 마주친 환자들 중 상당수가 공통적으로 비정상적인 내분비계 증상과 정신적 이상 상태를 보이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DWB-RU는 내부적으로 조용한 역학조사와 임상 기록 수집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특히 15세에서 25세 사이의 남성 환자들 중 약 92%가 ‘젖가슴의 통증’과 ‘가슴의 팽창’을 호소했으며, 일부는 브래지어를 착용하거나 여성 속옷을 요구하며 진료소를 찾기도 했다. 몇몇 청소년은 “가끔 피가 비치고 배가 아프다”며, 스스로 생리를 시작했다고 믿는 환상 증상(Pseudo-menarche)을 겪었다.

DWB-RU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의학적으로 남성이 생리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들은 분명히 여성으로서의 신체 감각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호르몬 불균형으로 유발된 장출혈, 감염, 위장 증상을 생리로 착각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신체 이상이 아니라, 자아 인식의 혼란과 정체성 붕괴로 이어지는 구조적 현상이다.”

의료진 대부분은 이런 증상이 지역적 환경오염이나 전후 영양실조, 혹은 마약류 오남용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추정했으며, 일부는 "수도 수질 문제" 혹은 "호르몬 유사물질이 포함된 외부 의약품의 부작용"을 의심하기도 했지만, 정부가 고의적으로 상수도에 여성호르몬을 투입했다는 사실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DWB-RU의 1981년 2월 진료소 회의록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남아 있다:
“이 정도 규모의 호르몬 반응이 단일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의학적으로 매우 이례적이다. 그러나 상수도 오염을 의심하기엔 그 가능성이 너무나 비상식적이다. 설마 가 식수에 그런 짓을 하겠는가?”

결국 피해의 원인은 정확히 파악되지 못한 채로, 성기능 저하, 성정체성 혼란, 정서 불안정, 자살 충동 등 수많은 사례가 진료소 기록에 축적되어 갔다. DWB-RU는 이를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전례 없는 인위적 내분비 붕괴 현상”이라 명명하고, 정부에 공식적인 자료 제출을 요청했으나, 루이나 당국은 “콘스탄티노폴 주민은 루이나 국적자가 아니며, 관할권 밖의 보건정보는 제공할 수 없다”며 이를 거부했다.

그러던 중, 1982년 11월 12일 밤, 콘스탄티노폴 제3구역 동부 텐트 진료소정체불명의 무장 갱단에 의해 습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공격자들은 의약품이나 환자에게는 일절 손대지 않고, 곧장 진료소의 기록보관소로 직행해 의료 데이터가 저장된 하드디스크, 문서, 테이프 등을 조직적으로 파괴했다. 이들은 강력 자석, 드릴, 해머 등 정보 저장매체 파괴에 특화된 도구를 소지하고 있었으며, 컴퓨터와 서버, 휴대용 장비의 저장 장치를 자석에 노출시키고, 직접 물리적으로 분해하였다.

현장에 있던 간호사 에밀리 코스터는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그들은 약 한 알도 훔치지 않았고, 환자도 다치지 않았다. 목적은 명확했다. 정보를 없애는 것. 그들은 하드디스크와 기록 파일만 골라 파괴했다.”

이 공격으로 인해 피해자 3,200여 명의 진단 기록과 생체지표 분석 자료, 정신과 보고서 등 핵심 데이터가 복구 불가능하게 파괴되었으며, DWB-RU가 4년간 축적해온 전체 기록의 약 80%가 영구 소실되었다. 루이나 정부는 이 사건에 대해 “무정부 상태 하의 갱단 충돌로 인한 우발적 피해”라고 해명했으며, 수사나 체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DWB-RU 내부 문건은 이 습격을 “정보 파괴를 목적으로 한 계획된 작전”으로 분석했으며, 사건 당일 루이나 군정청 관할의 CCTV와 통신망이 동시에 중단되었던 정황이 외부 언론에 보도되며, 정부의 묵인 또는 개입 의혹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결국, 남아 있던 일부 기록과 암호화 보고서 파일만이 제네바 본부로 송신되었으며, 이 중 하나였던 〈콘스탄티노폴 남부 집중진료 보고서(1981~1982)〉1983년 루이나 의회에서 한 의원의 폭로를 통해 세상에 공개되었다.

이후 2004년, 루이나 의회 보건감사특위는 공식적인 진상조사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보고서는 실험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이를 “국가 명령이라기보다는 민간 계약의 관리 실패와 과학적 무모함이 낳은 결과”로 정리하였고, 형사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플라자 그룹은 자회사 해산을 이유로 법적 책임을 면제받았다.

2025년 현재, 콘스탄티노폴 자치구에는 여전히 공식 병원이 존재하지 않으며, 피해자 대다수는 영구적 생식기능 손상과 정신적 후유증을 앓고 있다. 보상은 지연되고 있고,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책임을 묻고 있으나, 루이나 정부는 공식 언급을 피하고 있다.

4. 피해 [편집]

프로젝트 E가 콘스탄티노폴에 투입된 이래, 남성 피해자들은 일상적으로 상수도를 통해 극단적인 농도의 여성호르몬을 섭취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신체적·정신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증상은 점진적이었지만 강력했다. 피로감, 정서적 불안정, 생식기 위축, 유방 조직의 팽창, 그리고 이따금 피를 비친다는 등의 증상은 단순한 건강 이상이 아니라 정체성 전체를 무너뜨리는 체험으로 이어졌다.

일부 남성은 스스로 생리를 한다고 착각하며 “출혈 주기를 기록하고 있다”고 진료소에 말하기도 했고, 어떤 청년은 복통을 호소하며 "이제 난 여자가 된 것 같다"고 울부짖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자의적으로 혹은 자해적 충동에 따라 성기를 절단하는 사례가 연속적으로 발생했다는 점이다. 루이나 국경없는 의사회(DWB-RU)의 1982년 보고서에 따르면, 실험 피해자 중 최소 27명이 생식기 절단을 감행했고, 이들 중 다수는 감염으로 사망하거나 평생 인공도뇨기를 사용해야 하는 상태로 전락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루이나 중앙정부는 콘스탄티노폴 주민을 ‘비시민(non-citizen)’으로 간주하며 헌법적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고 일관되게 선을 그었다. 시민권을 얻으려면 루이나 연방군에 자원입대해야 했으나, 피해자 대부분은 이미 육체적 기준에서 탈락하거나, 정신적 문제로 입대가 불가했다. 루이나는 여성징병 국가였고, 외형상 여성이 된 남성 피해자들이 입대를 시도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군 내부에서는 이들을 ‘비정상 사례’로 판단하여 병역 심사에서 배제하거나, 비공식적 방법으로 내쫓았다. 결국 이들은 ‘남성도 아니고 여성도 아닌 자’로서 국가로부터의 보호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그 다음에 기다리고 있던 것은 ‘시장’이었다.

콘스탄티노폴 중심부, 과거 상업지구였던 제5구역과 제6구역 일대는 전후 무정부 상태 속에서 급속히 범죄조직의 통제 아래 놓였고, 이들은 전쟁 잔존 여성과 성소수자, 호르몬 실험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성산업을 ‘신규 산업’으로 재편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홍등가 지하 구역(Red Sector Underground)’이라 불린 이곳은 단순한 성매매 업소의 집합이 아니었다. 이는 구조화된, 산업화된, 그리고 시스템적으로 조직된 인간 변형 상품 시장이었다.

피해자들은 대개 인신매매 혹은 ‘쉼터’라는 명목의 수용시설을 통해 이곳으로 유입되었다. 마약, 알코올, 진통제, 신경안정제를 혼합해 만든 약물을 지속적으로 투여받으며, 현실 감각과 기억을 흐리게 만드는 방식으로 저항 능력을 제거당했다. 이후 피해자는 ‘상태’에 따라 분류되었고, 범죄조직은 이를 세부 상품군으로 나눴다:

제1군: 여성호르몬 반응이 신체에 완전히 나타난 이들. 유방 조직이 발달하였고 외형적으로 여성과 유사. 고가의 ‘환상체험’ 전용.

제2군: 신체 변화는 불완전하나 심리적 여성 동일화가 진행된 케이스. 주로 폭력적 취향의 손님에게 배정.

제3군: 성기 절단자 혹은 비기능 상태자. '변이(變異)'로 분류되어 외국 고객 전용 클럽에 판매.

제4군: 호르몬 변화와 자아 붕괴가 공존하며 언어 소통이 불가한 이들. ‘물건’으로 취급되어 비밀 사교파티 등에 이용됨.

홍등가 구역에는 이들을 위한 전문 업소들이 존재했다. 간판은 없고, 출입자는 비밀번호를 제시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내부에는 의료장비처럼 보이는 고문기구가 진열되어 있었고, 실험 피해자들은 ‘기이하고 모순된 욕망’을 소비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특히 외국 관광객 중 일부는 해당 피해자들이 ‘남성으로 등록되어 있는 여성’이라는 점에 큰 흥미를 보였으며, 이를 법적으로 안전한 성착취로 간주하는 사례도 존재했다.

프로젝트 E의 피해는 남성 피험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상수도를 통해 유입된 합성 여성호르몬(주로 에스트로겐 및 에스트라디올 유도체)은 콘스탄티노폴 전역의 인구에게 무차별적으로 노출되었고, 그 중에서도 특히 성장이 진행 중인 8세 미만의 여아들에게 가장 심각한 생리적 교란을 초래했다.

가장 먼저 포착된 증상은 비정상적인 유방 성장(hyperthelarche)이었다. 일부 피해 아동은 겨우 6세, 혹은 그보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성인 여성보다 발달한 유방을 갖게 되었으며, 이로 인한 통증과 일상생활 장애가 의료진에 의해 빈번히 기록되었다. 루이나 국경없는 의사회(DWB-RU)가 1980년 4월 남부 진료소에서 작성한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사례를 인용한다:
“피해 아동 H양(당시 만 7세)은 유방 둘레가 89cm에 달했으며, 스스로 ‘어른이 된 것 같다’고 말했지만, 얼굴은 유치원 아이와 다름없었다. 무게 때문에 상체 균형을 잡지 못하고 항상 허리를 구부린 채 생활하며, 수면 중 자주 질식 증세를 보였다.”

뿐만 아니라, 고농도 호르몬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아동들 중 상당수는 성조숙증(precocious puberty)을 앓았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2차 성징은 11~13세 사이에 시작되나, 프로젝트 E가 본격화된 지역에서는 8세 이전에 음모와 액취(겨드랑이 냄새), 초경 등을 경험한 아동이 다수 확인되었다. 일부는 겨우 5세에 초경을 겪은 사례도 있었으며, 의학적으로 매우 이례적인 수준이었다.

의료 기록에 따르면, 이른 성적 발달은 뼈 성장판의 조기 융합을 유발해 결과적으로 키 성장이 멈추게 된다. DWB-RU의 1982년 야전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분석을 남겼다:
“피해 여아 50명 중 38명이 골연령과 생물학적 성년기의 괴리를 보였고, 평균 키는 114cm로 측정되었다. 환자 대부분은 키 성장 가능성이 종료된 상태였으며, 이는 ‘기능성 외소증’으로 분류될 수 있다.”

신체적 변화 외에도 정신적·사회적 피해는 막심했다. 일부 피해 아동은 급격한 신체 변화로 인해 또래 집단에서 따돌림을 당했으며, 보호자들조차 자녀의 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의료기관에 “성전환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고 상담을 요청하기도 했다. 많은 피해자들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정체성 혼란, 외형에 대한 수치심, 성적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1981년 당시 6세였던 A양은 DWB-RU 북부 진료소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학교에 갔더니 남자아이들이 가슴을 만지며 ‘어른 같다’고 놀렸어요. 선생님도 뭐라 하지 않았고요. 친구들이 저를 피하니까 점점 집에만 있게 됐어요. 엄마는 ‘왜 이렇게 몸이 더러워졌냐’며 저를 때렸어요.”

A양은 이후 12세에 키 성장이 완전히 멈췄고, 21세 기준 키는 131cm에 머물렀다. 그녀는 “나는 어릴 때 어른이 되어버렸고, 어른이 된 이후엔 더 이상 자랄 수 없었다”고 회고하며, 현재도 사회적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와 같은 외형적 변화는 일부 성범죄자들에게 ‘조숙한 아이들’을 찾는 변태적 성적 욕망을 자극하기도 했다. 콘스탄티노폴 홍등가 일대에서는 프로젝트 E의 피해를 입은 여성과 소녀들이 ‘특이 취향 고객’을 위한 상품화 대상으로 유입되었으며, 이들 중 일부는 보호자의 손에 직접 매각되기도 했다.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목격담도 포함되어 있다:
“외견상 10세 남짓한 소녀가 거의 헐벗은 상태로 성인 여성의 복장을 하고 창가에 서 있었다. 콘스탄티노폴 경찰 순찰차는 그 앞을 여러 번 지나갔지만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았다.”

DWB-RU는 이들의 일부가 해외로 밀반출되었음을 문서화하였다. 스위스, 싱가포르, 유고랜드, 체르드 공화국 등에서 발견된 피해자들은 대부분 심리적 트라우마로 실어증 상태였고, 나이는 14세에서 28세 사이에 집중되어 있었다. 콘스탄티노폴 내부에 남은 이들 역시 점점 ‘노후화된 재고’로 분류되며 거리로 내쫓기거나, 장기밀매 또는 불법 인체실험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이러한 시장이 ‘사라진 인간들’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다. 1985년을 기준으로 프로젝트 E 피해자 중 약 2,100여 명이 공식적으로 행방불명 상태이며, 이들은 어디에도 등록되지 않았고, 어떤 보호체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드디스크는 파괴되었고, 진료소는 불탔으며, CCTV 기록은 끊겼다. 기록에서 사라진 자들, 말할 수 없는 자들, 법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자들만이 이 시장의 원재료였다.

루이나 정부는 이에 대해 “본토 행정권의 통제 밖에 있는 자치구의 범죄 문제”로 일축하며, 단 한 차례도 공식 수사를 명령하지 않았다. 오히려 언론 보도가 나올 때마다 “콘스탄티노폴의 가짜 뉴스”라며 보도 금지 요청을 반복했고, DWB-RU와 같은 인도주의 단체들은 갈수록 출입이 제한되었다. 언젠가부터 콘스탄티노폴에 남은 것은, 고장난 네온 간판과 말 없는 사람들뿐이었다.

5. 연관된 인물/기관/ 업체 [편집]

《프로젝트 E》는 단순한 연구 사업이 아니라 루이나 정부, 민간기업, 연구진, 국제의료단체가 뒤얽힌 복합적이고 밀실적인 체계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 기획자 중 하나는 플라자 그룹 산하 생화학 자회사인 플라자 바이오사(Plaza Bio Inc.)의 연구소장이던 알렉산더 프로이트 박사였다. 그는 인공 호르몬 물질인 17α-에티닐에스트라디올(EE2)의 고농도 대량 투입 실험을 상수도망을 통해 수행하기 위한 기술적 설계의 핵심 인물이었으며, 이른바 ‘C-RNT37’ 계열 복합물질을 최종 배합한 책임자였다. 그는 1983년 실험 종료 직전 회사에서 사임했고, 이듬해 실종되며 지금까지 생사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실험은 군과 행정기관의 교차 감독 아래서 비밀리에 추진되었다. 루이나 중앙위생국의 정책조정관이었던 마르틴 카예는 행정부 내 실험기록을 ‘공공위생 실험’이라는 명목으로 위장해 문서화한 인물이며, 실질적으로 플라자 바이오사와 루이나 육군 공병대 사이를 연결해주는 중간 연락책이었다. 그는 실험 종료 직후 법무부 고문으로 이동하면서 프로젝트의 핵심 문건 다수를 ‘기밀 파기 문서’로 전환하였다.

프로젝트가 실행되던 시기, 루이나 사회복지부는 콘스탄티노폴 자치구 주민들에 대한 ‘복지 정착 사업’을 시행했다. 이는 겉보기엔 자활 상담과 주거 복구, 정신 건강 케어 프로그램을 포함한 국가 지원책이었으나, 실제로는 사회복지부 차관 하워드 레녹스의 주도 아래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장기 추적 관찰 및 행동분석 프로그램이었다. 자활상담을 받는 과정에서 환자들은 스스로가 겪는 내분비계 이상을 상세히 서술해야 했고, 이 내용은 별도 의료정보 서버로 전송되었다.

이러한 실험 피해를 최초로 인식하고 기록한 의료진은 루이나 국경없는 의사회(DWB-RU) 소속 내과의사인 엘로이 자베르였다. 그는 1980년부터 콘스탄티노폴 남부의 이동형 진료소에서 일하면서 15세에서 25세 사이의 남성 환자들에게서 유방 팽창, 음경 위축, 생리 착각 현상 등 기이한 증상들을 반복적으로 목격하였다. 그는 이 증상들이 단순한 영양결핍이나 정신병리로 설명되지 않음을 느끼고, 동료 간호사인 에밀리 코스터 등과 함께 내부적으로 증례 기록을 수집하였다. 자베르는 1982년 10월, 이 보고서를 암호화된 채널을 통해 제네바 본부로 송신했으며, 이 문건이 훗날 《프로젝트 E》의 실체를 외부에 드러낸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 문서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세력은 프로젝트의 기록을 말살하고자 움직였다. 1982년 11월, 콘스탄티노폴 제3구역 동부에 있던 DWB-RU 진료소가 정체불명의 갱단 무장세력에게 급습당했고, 이들은 의약품이나 환자에게는 일절 손대지 않은 채 모든 기록보관장비, 하드디스크, 문서를 파괴했다. 이들은 강력 자석과 전동드릴, 공업용 망치를 준비해 서버의 저장장치를 물리적으로 제거했고, 이 장면을 목격한 간호사 에밀리 코스터는 “누가 봐도 목적은 기록 파괴였다”고 증언하였다. 해당 사건은 루이나 정부에 의해 단순 갱단 충돌로 처리되었고, 어떠한 체포나 수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이후 2004년, 루이나 국회는 보건감사특위를 구성해 청문회를 열었고, 당시 위원장이었던 샬롯 윈스턴 하원의원이 조사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실험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인정하면서도 “이는 국가 차원의 명령이 아닌, 민간 기업과 연구계의 관리 실패가 결합된 기술적 판단 오류”라고 결론지었다.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고, 플라자 바이오사는 해산됨으로써 법적 책임에서 벗어났다.

루이나 국가정보국(NIA)의 국장이었던 카산드라 로웰은 실험 당시 정보 차단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으나, 실질적인 증거나 수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보기관은 실험과 관련한 보고서 보관 사실 자체를 부인했으며, 전산기록은 모두 ‘보존 기한 만료’로 삭제된 상태였다.

한편, 루이나의 현직 대통령인 루스탈지아 그래이는 이 사건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었지만, 2021년 대선 후보 시절 이 사안에 대해 “루이나는 그러한 실험에 관여하지 않았다. 이는 외주 시스템의 통제 실패일 뿐이다”라고 발언하면서, 인권단체의 거센 반발을 산 바 있다.

이처럼 《프로젝트 E》는 단일 기관이나 인물의 주도로 추진된 사건이 아니라, 국방·보건·기업·정보·의료를 아우르는 복합적 구조 하에 은밀하게 작동한 생체 실험이었으며, 이후 정보 말살과 은폐, 책임 회피의 전형적인 사례로 국제사회에 오랫동안 회자되고 있다.
[1] 남자인데 가슴의 크기가 비정상적으로 자라나고, 통증이 느껴진다는 보고가 다수 확인되었다.